클래식으로 만나는 장국영, 예술감독 지나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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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으로 만나는 장국영, 예술감독 지나김을 만나다.

장국영에게 클래식을 입혀넨
뜻밖의 성덕을 만나다 .

나의 레슬리 ep24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지나김의 레슬리

– by. 칼럼리스트 장지희 –

연재 초반, 세상이 살뜰하게 기억하지 않는 인물(A.K.A 장국영)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광장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게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레슬리에 대한 글이 한 편씩 쌓일 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그를 여전히, 아직도, 늘 아끼고 있는 팬들은 내 상상보다 훨씬 많았다. 홀로, 혹은 마치 점조직처럼 몇몇이 소소하게 모여 그를 기억하고 아끼는 팬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동안 외롭다 생각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맞춰져가는 퍼즐처럼 감춰진 팬들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의 성덕들도 차례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의외의 존재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레슬리를 기억하는 성덕이었다.
그 주인공은 장국영의 넘버들을 클래식으로 재해석해낸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이하 코리안팝스)의 지나 김 예술감독. 그녀의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문득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클래식과 장국영이라, 사실 상당히 의외의 조합이라 처음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살짝 신기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를 실제로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그런 마음부터 털어놓았더니 그녀 역시 처음 내 연락을 받았을 때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장국영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며.
한적한 오전시간 대의 어느 브런치 카페, 그렇게 나와 그녀는 서로 상상하지 못한 ‘신기한’ 상대와 만나 장국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코리안팝스는 “심포니로 즐기다”라는 슬로건 하에 대중가요, 영화음악, 게임OST 등을 포괄하는 팝 음악을 클래식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팝 오케스트라인 코리안팝스의 그 주옥같은 라인업에 장국영의 음악들이 속해있는 것은 전적으로 장국영의 오랜 팬인 그녀 덕이다.

지금까지 코리안팝스는 장국영의 음악 세 곡을 클래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영화 <영웅본색> 시리즈의 주제가인 <當年情>과 <奔向未來日子>, 그리고 영화 <천녀유혼>의 동명 주제가 <倩女幽魂>까지. 한국인들이 장국영 하면 떠올리는 대표곡 세 곡을 모두 선보인 셈이다.

이 곡들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댓글에는 ‘홍콩이나 중국에서도 하지 않은 시도를 한국에서 먼저 했다니!’하며 감격하는 국내외 팬들의 댓글이 자주 보인다고. 이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녀가 느끼고 있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mJfgb7ySgeo&feature=youtu.be

그래, 듣고보니 그렇다.
코리안팝스는 자국의 오케스트라도 하지 않은 시도를 한국에서 먼저 해버렸다.
그런데 한국도 아니고, 홍콩의 음악을 연주하는데 대해 내부에서 거부감은 없었을까?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는 굉장히 열린 조직이기 때문에
처음 장국영의 음악을 작업하려고 했을 때 반대의견은 없었어요.
그보다는 다들 ‘장국영이 누구야?’, ‘<영웅본색>이 뭐야?’라고 물어왔죠.
하지만 지금은 단원들이나 제작진 모두 다 장국영이나 영화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요.
거꾸로 저에게 이런저런 제보를 해줄 만큼.”

사실 그보다 어려운 것은 저작권 확보였다고 한다. 그녀의 설명처럼 레슬리의 노래들은 저작권이 복잡한 경우들이 많다. 국내 음악서비스에 그의 앨범이 아예 없거나, 앨범은 있어도 수록곡들이 이빨 빠진 옥수수처럼 듬성듬성한 이유도 다 이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그녀가 코리안팝스에서 처음 시도한 장국영의 음악은 <奔向未來日子>였다. 이 곡은 홍콩의 소규모 에이전시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대형 레이블과 달리 노출이 많이 되지 않은 곳이라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 자체가 미션이었다고 한다. 홍콩의 저작권 단체를 거쳐 물어물어 어렵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고.

<倩女幽魂>의 경우에는 워낙 팬들의 반응이 좋아서 디지털 싱글 발매를 계획했지만, 이 과정 또한 녹록한 작업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직 디지털 싱글에 대한 개념이 흔하지 않을 시절이라 마치 게임의 퀘스트를 수행하듯 한 단계씩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단다.

이렇듯 한 곡씩 어렵게 판권을 보유한 업체를 찾아내고, 그들을 설득한 끝에 이 세 곡의 음악은 코리안팝스의 무대 위에서 차례로 연주되었고, 그녀는 다시 이 라이브 실황을 추린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실로 엄청난 여정, 팬심이 아니고서는 해내기 힘든 일이었을테다. 홍콩의 에이전시 역시 그런 그녀가 신기했는지, 지금도 그녀가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하면 그저 웃기부터 한다고.

그렇게 고생한 덕분인지 장국영의 음악들은 코리안팝스가 선보인 곡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Very Best of’ 들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奔向未來日子>와 <倩女幽魂>은 오는 5월 1일에 열리는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특히나 이번 공연에서 <천녀유혼>은 국악과 접목하여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재해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스포일링이 될 것 같아서 함구하지만, 그녀의 아이디어를 미리 들은 내 마음 속에는 벌써부터 기대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ujVjfMMpSOs&feature=youtu.be

“여덟 살, 아홉 살 쯤에 삼촌이 빨간 턱시도를 입은 장국영의 LP를 주셨어요.
<當年情>이 첫 번째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던 앨범이었는데,
그게 장국영을 처음으로 만난 순간이었죠.”

그녀가 장국영의 팬이 된 것은 가족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삼촌이 주신 LP판을 통해 그가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의 음악부터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모님을 따라 중화권 영화와 드라마를 두루 섭렵하면서 <천녀유혼>을 보고 본격적으로 장국영에게 입덕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 보았던 장국영의 영화 중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걸 어떻게 딱 하나만 고르냐”고 반문하며 “당연히 전부 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통 큰 스케일의 팬이기도 하다.

부모님도 그녀의 장국영 사랑을 상당히 지지해주셨던 것 같다. 부모님을 졸라 집에 위성안테나를 설치해 MTV를 즐겨보고,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홍콩에 출장을 가실 일이 생기면 어머니 대신에 그녀가 동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홍콩에 갈 때마다 HMV에 들러 장국영의 음반이며 영화들을 싹쓸이해왔다고. 그 덕분에 장국영의 모든 앨범과 영화들을 갖추게 되었다며 웃는다.
그 시절 홍콩을 상상 속의 원더랜드 쯤으로 상상하며, 그곳에서 건너온 불법복제 ‘빽판’으로 한 곡씩 수집하듯 새로운 노래를 접했던 나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홍콩에서 공수해온 앨범들을 살뜰히 가지고 다니며 들었다는데, 친구들은 팝을 듣고 가요를 듣는데 그녀 혼자 독야청청 장국영을 들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혼자 고집스레 이어폰을 끼고 장국영의 음악을 들었을 과거의 어린 그녀가 상상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홀로 남들과는 다른 감성의 음악을 들었던 그 시절이, 그녀가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접목해서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시키고 그것을 사업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한 밑바탕이 되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그럴 것 같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장국영을 보면 늘 그런 마음이 들었거든요.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고, 그래서 이 사람이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녀에게, 그녀의 2003년 4월 1일에 대해 물었다. 그 날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소식을 들었느냐고.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그녀에게 레슬리의 소식이 가 닿은 것은 시간이 다소 흐른 뒤였다고 한다.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떠나기 전에 발표했던 곡을 들으며 떠올렸던 ‘글루미 선데이’가 생각났다고 한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더니, 그녀가 장국영을 볼 때마다 들었던 슬픈 예감 역시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슬픈 노래를 부를 때보다도, 예쁜 노래를 부를 때의 레슬리가 더 슬픈 느낌이 든다고 했다. 슬픈 노래는 그저 감정을 따라가면 그 뿐이지만, 예쁘고 아름다운 곡을 부를 때의 레슬리는 그 자체가 가진 공허하고 슬픈 느낌과 아름다움이 만나 서글픈 마음이 들 정도라고. 너무 아름답고 연약해서 그대로 깨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이번에는 가장 좋아하는 곡을 묻는 내 질문에 또다시 “어떻게 하나만 골라요”라고 반문하다가, 그 아름다워서 슬픈 느낌을 잘 느낄 수 있는 곡이라며 <烈火燈蛾(열화등아)>를 어렵게 꼽는다.

사실 내가 팬들을 만나면 공식처럼 묻는 “어떤 영화나 음악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장국영의 어떤 모습 혹은 어떤 시기를 가장 사랑하느냐와 맞닿아있다. 워낙 다양한 색을 가진 사람이기에 사람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의 ‘측면’이 있을 터.
그래서 그녀는 어떤 모습의 장국영을 가장 사랑했는지 궁금해서 바보같은 질문을 두 번이나 던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나김 감독의 레슬리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너무나도 아름답다 못해 슬픈 존재인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장국영의 노래를 주로 듣는 곳은,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인 자동차 안이라고 한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기 직전, 나는 그녀에게 팬들이 새롭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주어서 팬들을 대신해 (그 누구도 내게 대표를 시켜준 적은 없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거듭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를 통해 더 많은 장국영의 음악들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청탁성’ 발언도 함께.

그런데 내 말에 아직은 장국영의 다른 곡을 작업할 계획이 없다고 답하는 그녀는, 팬이 아닌 이들까지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장국영의 음악에 대한 고민을 가진 듯 하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접목하는 그녀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주책맞은 팬심으로 나는, 그래도 기대해본다.
언젠가 또다시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해내는 ‘그녀의 레슬리’와 만날 수 있기를.

2020-04-03T18:43:15+09:00